평산 신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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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평산 신씨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. 신숭겸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기여했으며,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려다 전사했다. 평산 신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, 상신, 대제학을 배출하며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. 조선 시대에는 신개, 신립, 신사임당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했으며, 근현대에는 신돌석, 신익희, 신현확 등이 평산 신씨 가문에서 나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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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산 신씨 - [성씨/가문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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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산 신씨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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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가 | 한국 |
관향 | 황해북도 평산군 |
시조 | 신숭겸(申崇謙) |
주요 인물 | 신군평 신개 신호 신영 신잡 신립 신흠 신경진 신임 신완 신만 신회 신재식 신응조 신헌 신익희 |
인구 (2015년) | 563,375명 |
비고 | 평산신씨 대종중 |
2. 시조
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은 태봉의 장군으로 있다가 배현경, 홍유, 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황제로 추대하여 고려 개국일등공신이 되었다.[1] 본명은 능산(能山)이었으나, 태조에게 평산에서 신(申)씨 성을 사성(賜姓)받았다.[9] 927년경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의 옷을 입고 오늘날 대구 지역에서 전투 중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.[2]
평산 신씨는 고려 건국 초기,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신숭겸 장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. 신숭겸은 918년 배현경, 홍유,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.[1]
전설에 따르면, 신숭겸이 태조왕과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 명사수였던 신숭겸은 "날아가는 기러기 중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"를 명중시켰고[3], 왕건은 감탄하여 그 기러기들이 날아다니던 지역인 평산(平山)을 신숭겸에게 하사하였다.[4] 시호는 장절(壯節)이다.[9] 994년(성종 13) 태사(太師)로 추증되어 태묘(太廟)의 태조 사당에 배향되었다.[9]
3. 역사
신숭겸은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의 옷을 입고 싸우다 전사했다.[2] 사후 태조는 신숭겸의 아들과 동생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다.
전설에 따르면, 평산 신씨라는 성씨는 신숭겸이 태조와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, 날아가는 기러기 중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히는 뛰어난 활솜씨를 보이자,[3] 왕건이 감탄하여 그 기러기들이 날아다니던 지역인 평산(平山)을 하사하면서 유래했다고 한다.[4]
평산 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80명, 상신(정승) 8명, 대제학 5명을 배출하며 명문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.[10]
신개(申槩)는 세종 때 좌의정에 올랐고, 그의 후손들이 정계에 진출했다. 신개의 증손 신상(申鏛)은 판서를 지냈으며, 신상의 손자 신잡(申磼)은 1604년 호성공신(扈聖功臣)으로 평천부원군(平川府院君)에 책봉되었고, 영의정에 추증되었다.[10] 신잡의 동생 신립(申砬)은 임진왜란 때 삼도순변사(三道巡邊使)로 활약했으나,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했다. 신립의 아들 신경진(申景禛)은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영의정에 올랐고,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. 신경진의 증손인 신완(申琓)은 1703년(숙종 29년) 영의정에 오르고 평천군(平川君)에 봉해졌다.[10]
신개의 동생인 신효(申曉)를 파조로 하는 정언공파(正言公派)에서는 신효의 증손인 신영(申瑛)이 우참찬을 역임했고, 신영의 손자인 신흠(申欽)이 인조 때 영의정에 올랐으며, 신응조(申應朝)가 고종 때 좌의정을 역임하였다.[10]
신군평(申君平)의 손자인 신호(申浩)를 파조로 하는 사간공파(思簡公派)에서는 신호의 10대손 신임(申銋)이 참찬(參贊)을 역임했고, 12대손 신만(申晩)·신회(申晦) 형제가 영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. 신재식(申在植)은 1835년(헌종 1) 대제학에 올랐다.[10]
조선 시대에는 과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에, 평산 신씨 가문은 세습 귀족이 아닌, 시험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들을 배출했다.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평산 신씨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덜 배출했다.
3. 1. 고려 시대
평산 신씨는 고려 건국 초기,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신숭겸 장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. 신숭겸은 918년 배현경, 홍유,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.[1]
신숭겸은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의 옷을 입고 싸우다 전사했다.[2] 사후 태조는 신숭겸의 아들과 동생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다.
전설에 따르면, 평산 신씨라는 성씨는 신숭겸이 태조와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, 날아가는 기러기 중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히는 뛰어난 활솜씨를 보이자,[3] 왕건이 감탄하여 그 기러기들이 날아다니던 지역인 평산(平山)을 하사하면서 유래했다고 한다.[4]
3. 2. 조선 시대
평산 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80명, 상신(정승) 8명, 대제학 5명을 배출하며 명문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.[10]
신개(申槩)는 세종 때 좌의정에 올랐고, 그의 후손들이 정계에 진출했다. 신개의 증손 신상(申鏛)은 판서를 지냈으며, 신상의 손자 신잡(申磼)은 1604년 호성공신(扈聖功臣)으로 평천부원군(平川府院君)에 책봉되었고, 영의정에 추증되었다.[10] 신잡의 동생 신립(申砬)은 임진왜란 때 삼도순변사(三道巡邊使)로 활약했으나, 탄금대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했다. 신립의 아들 신경진(申景禛)은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영의정에 올랐고,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. 신경진의 증손인 신완(申琓)은 1703년(숙종 29년) 영의정에 오르고 평천군(平川君)에 봉해졌다.[10]
신개의 동생인 신효(申曉)를 파조로 하는 정언공파(正言公派)에서는 신효의 증손인 신영(申瑛)이 우참찬을 역임했고, 신영의 손자인 신흠(申欽)이 인조 때 영의정에 올랐으며, 신응조(申應朝)가 고종 때 좌의정을 역임하였다.[10]
신군평(申君平)의 손자인 신호(申浩)를 파조로 하는 사간공파(思簡公派)에서는 신호의 10대손 신임(申銋)이 참찬(參贊)을 역임했고, 12대손 신만(申晩)·신회(申晦) 형제가 영조 때 영의정에 올랐다. 신재식(申在植)은 1835년(헌종 1) 대제학에 올랐다.[10]
조선 시대에는 과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에, 평산 신씨 가문은 세습 귀족이 아닌, 시험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들을 배출했다.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평산 신씨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덜 배출했다.
4. 분파
평산 신씨는 12세손을 기점으로 여러 파로 나뉘었으며, 15세손에 이르러 19개 파로 분파되었다. 주요 분파로는 문희공파(文僖公派), 사간공파(思簡公派), 정언공파(正言公派) 등이 있으며, 이 중 문희공파와 사간공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.
- 12세 신중명(申仲明)
- * 13세 신집(申諿)
- ** 14세 신익지
15세 신아 → 밀직공파(密直公派)
- ** 14세 신이
15세 신정도 → 봉상윤공파(奉常尹公派)
15세 신정리 → 장령공파(掌令公派)
- ** 14세 신안(申晏)
15세 신감 → 현령공파(縣令公派)
15세 신개 → 문희공파(文僖公派)
15세 신효 → 정언공파(正言公派)
- * 13세 신군평
- ** 14세 신규(申珪)
15세 신하 → 한성윤공파(漢城尹公派)
- ** 14세 신혼(申琿)
15세 신호 → 사간공파(思簡公派)
15세 신연 → 대제학공파(大提學公派)
15세 신기 → 온수감공파(溫水監公派)
- ** 14세 신수(申璲)
15세 신효창(申孝昌) → 제정공파(齊靖公派)
- ** 14세 신우(申瑀)
15세 신호 → 전서공파(典書公派)
- ** 14세 신순
15세 신인기(申仁錡) → 이상공파(貳相公派)
- * 13세 신현(申賢)
- ** 14세 신용희
15세 신득청 → 판사공파(判事公派)
- 12세 신자명(申自明)
- * 13세 신중전
- ** 14세 신윤공
15세 신유 → 진사공파(進士公派)
15세 신강 → 감찰공파(監察公派)
- ** 14세 신윤안
15세 신시현 → 판윤공파(判尹公派)
- * 13세 신중해(申仲諧)
- ** 14세 신국
15세 신도지 → 참판공파(參判公派)
- 12세 신헌주(申憲周)
- * 13세 신욱
- ** 14세 신현
15세 신우방 → 군수공파(郡守公派)
4. 1. 주요 분파
평산 신씨는 15세손에서 19개의 파로 나뉜다. 인구는 문희공파(文僖公派)와 사간공파(思簡公派)가 각각 30%를 차지한다.5. 항렬자
평산 신씨는 시조로부터 1세(世)로 하여 대동항렬(大同行列)을 쓰고 있다. 각 세대별로 정해진 글자를 이름에 넣어 항렬을 표시한다.
30세 | 31세 | 32세 | 33세 | 34세 | 35세 | 36세 | 37세 | 38세 | 39세 | 40세 | 41세 | 42세 | 43세 | 44세 | 45세 | 46세 | 47세 | 48세 | 49세 | 50세 | 51세 | 52세 | 53세 | 54세 | 55세 | 56세 | 57세 | 58세 | 59세 | 60세 | 61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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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(在) 口석(錫) 口종(鍾) 口경(景) | 口희(熙) 口상(相) 口수(秀) 태(泰) | 口균(均) 口규(圭) 口노(老) 口곤(坤) | 현(鉉) 언(彦) 윤(允) 종(鍾) | 口철(澈) 口식(湜) 口순(淳) 口영(泳) | 동(東) 상(相) 영(榮) 주(柱) | 口섭(燮) 口용(容) 口항(恒) 口환(煥) | 재(載) 숙(璹) 기(基) 배(配) | 口호(鎬) 口진(鎭) 口일(鎰) 口연(鍊) | 제(濟) 준(濬) 원(源) 홍(洪) | 口근(根) 口화(和) 口병(秉) 口집(集) | 성(性) 충(忠) 찬(燦) 덕(德) | 口용(用) 口익(翼) 口중(重) 口식(軾) | 원(元) 완(完) 극(棘) 욱(旭) | 口필(弼) 口우(雨) 口남(南) 口설(卨) | 단(段) 승(承) 제(劑) 영(寧) | 口무(武) 口빈(斌) 口성(成) 口무(戊) | 홍(弘) 세(世) 경(卿) 기(起) | 口염(廉) 口용(庸) 口경(慶) 口강(康) | 재(宰) 화(華) 상(常) 행(幸) | 口정(廷) 口승(升) 口연(延) 口성(聖) | 규(揆) 등(登) 계(癸) 봉(奉) | 口기(圻) 口경(坰) 口은(殷) 口철(哲) | 선(銑) 은(銀) 흠(欽) 금(錦) | 口태(泰) 口진(溍) 口준(浚) 口수(洙) | 계(桂) 순(栒) 병(柄) 송(松) | 口엽(燁) 口희(熙) 口렬(烈) 口형(炯) | 정(禎) 조(祚) 상(祥) 우(祐) | 口서(瑞) 口민(珉) 口규(珪) 口선(璿) | 연(淵) 해(海) 옥(沃) 호(浩) | 口모(模) 口락(樂) 口걸(杰) 口초(楚) | 이(怡) 은(恩) 현(炫) 병(炳) |
6. 주요 인물
- 신숭겸(신성겸), 시조이자 고려 장군[5]
- 신사임당 (1504 – 1551), 조선 시대 화가이자 시인[5]
- 신립 (1546 – 1592), 조선 시대 장군[5]
- 신유 (1619 – 1680), 조선 시대 장군[6]
- 신재효 (1812 – 1884), 조선 판소리 이론가[5]
- 신돌석 (1878 – 1908), 한국 의병장[5][7]
- 신팔균 (1882 – 1924), 한국 독립 운동가[5]
- 신익희 (1894 – 1956), 대한민국 정치인, 국회의장[5]
- 신현확 (1920 – 2007), 대한민국 정치인, 국무총리[5]
- 넬리 신 (1972년생), 한국계 캐나다인 정치인, 포트무디-코퀴틀람 국회의원 (2019 – 2022)[8]
6. 1. 고려 시대
평산 신씨는 10세기 고려 건국 시기에 뿌리를 둔 한국의 귀족 가문이다.[1]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.[1] 그는 918년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배현경, 홍유, 복지겸 등과 함께 큰 공을 세웠다.[1]신숭겸은 927년경 대구 지역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기 위해 왕의 옷을 입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다.[2] 사후 왕은 신숭겸의 아들과 그의 동생에게 장절공이라는 높은 귀족 칭호를 내렸다.[2]
전설에 따르면, 신숭겸은 왕건과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 명사수로서 "날아가는 기러기 중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"를 명중시켰다.[3] 왕건은 이에 감탄하여 그 기러기들이 날아다니던 지역인 평산(平山)을 신숭겸에게 하사하였고, 이것이 평산 신씨 가문의 기원이 되었다.[4] 현재 이 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에 위치해 있다.
6. 2. 조선 시대
조선 시대에 평산 신씨는 양반 가문 중 하나로, 문중 인물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.[5] 조선 시대에는 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했기 때문에 세습 귀족은 없었다.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평산 신씨는 조선 시대에는 신숭겸(신성겸)[5] 때와 달리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덜 배출했다.신개(申槩)는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냈으며, 문희공(文僖公)이라는 시호를 받았다. 신사임당(1504~1551)은 조선 중기 예술가로,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.[5] 신립(1546~1592)은 조선 선조 때 장군으로, 임진왜란에서 활약했다.[5] 신흠(申欽)은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, 문정공(文貞公)이라는 시호를 받았다. 신경진(申景禛)은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, 충익공(忠翼公)이라는 시호를 받았다. 신만(申晩)은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, 충헌공(忠獻公)이라는 시호를 받았다. 신회(申晦)는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, 충정공(忠靖公)이라는 시호를 받았다.
6. 3. 근현대
신돌석(1878년 ~ 1908년)은 대한제국 시기 의병장이다.[5][7] 신팔균(1882년 ~ 1924년)은 한국 독립 운동가였다.[5] 신익희(1894년 ~ 1956년)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제2대 국회의장을 지냈으며,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다.[5] 신현확(1920년 ~ 2007년)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2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.[5] 넬리 신(1972년생)은 한국계 캐나다인 정치인으로, 포트무디-코퀴틀람 지역구의 연방 하원의원(2019년 ~ 2022년)을 지냈다.[8] 신재효(1812년 ~ 1884년)는 조선 말 판소리 이론가 및 후원가였다.[5]7. 문화 유적
참조
[1]
웹사이트
Korean Architecture: Shin Sung-kyom shrine, Daegu
http://www.orientala[...]
[2]
웹사이트
CULTURE&TRADITION-Sin Jangjeolgong's grave
https://web.archive.[...]
2007-09-25
[3]
서적
Warriors Who Changed the National History
Indie Book
2002
[4]
웹사이트
평산신씨 평산닷컴
http://www.pyeongsan[...]
[5]
웹사이트
[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] 〈61〉 신(申·辛·愼)씨, 평산 신씨
https://www.segye.co[...]
2024-09-25
[6]
웹사이트
신류 (申瀏)
https://encykorea.ak[...]
Academy of Korean Studies
2024-09-25
[7]
웹사이트
신돌석 (申乭石)
https://encykorea.ak[...]
Academy of Korean Studies
2024-09-25
[8]
웹사이트
In August of 2022, I made my first visit to South Korea in 25 years. While I was there to speak at a conference in Seoul on the topic of Peace in Times...
https://www.facebook[...]
2024-09-25
[9]
웹사이트
『고려사』 권92, 열전5
https://terms.naver.[...]
[10]
뉴스
[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] 〈61〉 신(申·辛·愼)씨, 평산 신씨
https://www.segye.co[...]
세계일보
2013-11-1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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